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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의 봄

강 준 2017. 4. 14. 08:20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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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

 

1867년 중건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

 

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

 

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습니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습니다경복궁 홈피에서...

 

 

 

 

 

 

 

 

 

 

 

 

 

향정원

 

향원정(香遠亭)은 향원지 가운데 섬 위에 세워진 육각형의 정자로, 누각의 평면은 정육각형

 

이며, 이층의 익공식 기와지붕이다. 201232일에 보물 제1761호로 지정되었고, 경복궁

 

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1867(고종 4)부터 1873(고종 10)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경회루(慶會樓)

 

서북쪽 넓은 터에 있는 향원지(香遠池) 안의 작은 동산 위에 있다.

 

원래 연못의 북쪽에 연못과 정자를 연결하는 취향교(醉香橋)가 있었으나

 

6·25때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남쪽의 다리는 1953년에 가설된 것이다.

 

정자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층과 위층이 똑같은 크기이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으로 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이층 기둥 위에 짜여지는데,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枓 : 대접받침)를 놓고 끝이 둥글게 초각(草刻)된 헛첨차를 놓았다.

 

일출목(一出目)의 행공첨차(行工檐遮 : 외목도리와 장혀를 받치는 첨차)를 받치고, 다시 소

 

小累를 두어 외목도리(外目道里) 밑의 장혀長舌를 받친 몰익공식이다.

 

일층 평면은 바닥 주위로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고,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사방 둘레의 모든 칸에는 완자살창틀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모지붕으로,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 :

 

지붕마루의 가운데에 세우는 탑 모양의 기와로 된 장식)을 얹어 치장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